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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학교폭력과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고소득 종사자의 부모를 소재로 한 내용이다. 

 

줄거리

출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메인 예고편 Youtube

 

명문 기숙 고등학교의 한 학생이 학교 근처 저수지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다행히 저수지 관리인에 의해 구조 된 학생은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고, 죽음을 면할 수 있게 되지만 의식불명 상태가 된다. 

 

출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메인 예고편 Youtube

 

관련 사건을 조사하던 중 학교폭력의 정황이 포착 된다. 

저수지에 빠진 학생이 자신을 괴롭혔던 4명의 학생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임시 담임 교사에게 편지를 남긴 것이다. 

학교 측에서는 곧 바로 편지에 언급 된 학부모들을 소환하여 상황을 알린다. 

병원 이사장, 변호사, 해당 학교의 교사, 은퇴한 경찰

학교폭력 학생들 부모의 직업이다. 

 

출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메인 예고편 Youtube

 

가해 학생의 학부모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단순 사고로 사건을 덮으려고 의견을 모은다. 

교장 또한 학교 이사회의 눈치를 보며, 임시 담임 교사가 받은 피해 학생의 편지를 받아 보관한다.  

학교폭력을 은폐하고 사건을 무마 시키려했던 가해학생의 부모들에게 갑작스런 일이 발생한다. 

 

출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메인 예고편 Youtube

피해 학생이 사망했다.  


출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메인 예고편 Youtube

피해 학생의 사망으로 인해 사건의 파장이 커지기 시작했다. 

교장은 보관 했던 편지를 없애버리고, 임시 담임 교사에게 정규직을 제안하며 학교폭력 사망 사건을 은폐하는데 가담 시키려고 한다.

가해 학생의 부모들은 학교폭력의 주동자를 만들어 자녀들에게는 피해가 없도록 조장하는데 노력한다. 

피해 학생의 부모는 자식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미치도록 가슴 아파했다.

 

가해 학생의 부모들은 피해 학생과 친분이 있었던 여학생을 매수하고, 거짓말로 증언하며 가해 학생 중 1명을 학교폭력의 주동자를 만들고 법정에 선다. 

주동자로 몰린 학생의 부모는 끈질긴 조사 끝에 자신의 자녀 또한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고,

학교폭력을 피하기 위해 다른 희생자로 사망한 학생을 지목한 것이다.  

 

 

담은 생각, 담긴 생각, 담을 생각.

 

영화의 제목은 20년 전만 하더라도 문제가 많은 어린 사람들에게 어른들이 사용했던 상투적인 표현이다.

가정에서의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자녀의 문제를 상대의 무책임과 폭력으로 둔갑시키는 작금의 시대에는 부모 얼굴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다. 

 

 대부분의 학교 폭력을 소재한 영화에서는 피해자의 억울함과 상처를 담아 내기 위해서 연출과 각본에 많은 힘을 들인다.

그리고 피해자의 복수로 권선징악을 실현하거나, 무력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영화를 끝내며 피해자의 무력함과 허무함을 표현한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일부러 '네'를 '니'로 오기하면서까지 실제 학교폭력 가해 부모의 실태를 가감 없이 표현했다. 

 

사람이 죽었다. 고등학생이 죽었다. 입시 지옥이라고 불리우는 나라에서 내놓으라고 하는 명문 고등학교의 학생이 학우들의 괴롭힘으로 인해서 숨을 거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 학생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의 안위만 걱정한다. 

학생들은 곧 잘 싸운다.

주먹질을 하던, 말다툼을 하던 혈기왕성한 질풍노도의 시기에 다툼은 있을 수 있다. 

허나 다툼이 있었다면, 그 뒤에 반성 또한 있어야 한다.

폭력으로 관철한 자신의 주장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휘두른 폭력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말다툼으로 상한 마음은 쉽게 치유되지 않고, 멀어진 관계를 회복하는데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느새 어른들은 사회적 책임과 봉사 정신이 결여되고, 스스로의 이속을 챙기는데만 급급한 사회로 변했다.

악하면 벌을 받고, 선하면 축복을 받는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힘이 있으면 진실도 조작할 수 있다는 관념이 더 통상적인 사회가 됐다.

개성의 존중과 아집을 구분하지 못하고, 르네상스의 낭만은 역사의 전설로 사라져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 어른들을 보며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 이상은 이상한 모습이 아니게 됐다. 

 

이상한 영화가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서 이상한 글을 쓰고 있다. 

이상한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상한 세상의 어른과 아이가 오래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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